Jinwoo Hwon Lee
이훤




스필러

  잠에서 깬 스필러가 등을 말았다가 편다

  덜 뜯긴 스티커처럼

  입장한 적이 있는 것 같다 이 방에
  지은 적 없는 마음이 스스로 허물어진다

  타자가 타자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믿음이 몇 개의 기분을 지켰다

  그런 기분이 낱개의 믿음을 뜯었다

  이곳에서 필요한 정량의 선의는 
  개인적이고 
  동의되지 않는다

  스스로를 통용하는 사랑의 방식 
  사랑 앞에서만 사랑이 되는 사람의 방식을 믿게 되었다

  받았던 것을 건네었는데 그것을 다시 되돌려 받는다

  스필러는 아직 말을 삼킨다

  평평하고 반듯해지면 전부 끝나버릴 거라는 듯










     Q 15 - 배수구

    샤워실에 들어가며 오랜만에 시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요즘 사진 작업 때문에 시를쓰지 못했다 나는 라이트룸을 열었다 닫는다 가장 자주 드나드는 방을 


     빛의 방이라니 그런 이름은 사진에게 잘 어울린다 아마존을 열었다 닫고 메일 답신을 하고 필름을 현상하고 장을 보고 저녁 식사를 하고 접시를 닦느라 하루 내내 시를  쓰지 못 했다 뜨거운 물이 나오는 샤워헤드 밑에서 무얼 쓸 지 떠올려 보는데

     바닥에는 오래 전에 떠올린 적 있는 생각들 뿐

     이미 인쇄되었던 세계만 도착한다 호스는 길고 미지근하다 물이 뜨거워지는 일에 왜 그리 많은 시간이 소요될까 한 사람이 배달되는 일에 왜 이리 많은 사람이 소요될까 


     상실되는 몇 도의 온도는 쉽게 대체되고 실망하는 일이 늘었다 내가 실패할 때도 몸이 실패할 때도 무언가는 자란다 손톱이 자라고 머리카락이 자라고 시가 자란다 

     당장 쓰이지 않아도 마음은 거기 있다

     샤워를 마친다 물을 잠그고 머릴 말리며 보이는 배수구 위 반 원의 궤적 거기 빠진 머리카락 몇 모가 보인다 그런 것들이 당장 문장이 될 순 없겠지 쓰이지 않아도 시는 거기 있다










다섯 여섯 일곱 여덟


교실 문을 열고 나가면 
 
마침내 원했던 둘레의 기쁨을 가질 거라 생각했던 아이가 자라 네 번의 학교를 마쳤다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면접이 끝나고 

이제는 제 집이 생겼다 집을 나오는 날이 되고 나서야 그동안 읽지 않고 수집한 책들과 반도 쓰지 않은 새 노트들과 그간 받은 무릎의 횟수 같을 걸 세어 보기 시작했다 하루 아침에

청년이 된 아침의 표정은

본인도 정확히 헤아릴 수 없는 종류의 것 갑자기 누구도 그를 이해할 수 없을 거라 느꼈다 기쁨의 반경을 그는 다시 배우고 있다

밀린 청구서를 위해 노동 하고 다시 노동을 하고 그러다 보면 하나의 매듭이 올 지 

채 답하지 못했는데
저를 저 답게 해주는 사람에게 약속을 하고 결혼을 하고 손을 포개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저를 닮은 아이가 나왔다 

아이가 저의 표정을 따라하자 
울기도 했다
말을 시작할 땐 이 작은 집에서 이토록 넓어질 수 있는데 너와 나와 우리가 같은 방에서 자고 있는데 무엇이 더 필요할까 
했는데 
아직 셋인데

어느 날 아침 혼자, 눈 뜨니 혼자, 문을 열어 두었고 바람이 부는데도 우리 셋이 같이 있는데도
혼자다

써야겠구나 쓰지 못한 시간 동안 채집한

문을 모아두면 어떤 게 나인지 모르겠다 

더는 살아지지 않는 순간이 돼서야 쓰기 시작한다 사는 일이 자는 일은 꽤나 가까이 있고

살지 않았던 자는
손바닥에 손 밖에 남은 게 없기 때문에

가장 정확한 기분이 만들 수 있다

아이를 
돌보다 말고 한 문장 쓰고 달래다 몇 문장 쓴다
오늘 몇 매 썼는지 기록하는 일을 그만두었다

아이는 탈 없이 자라고 있는데 청구서를 꼬박꼬박 내고 있는데
비어 있다

네가 자라면 
하나의 개인으로 잘 사는 일이 얼마큼 어려운지 언젠가 말해주고 싶다 잘 쓰고 잘 찍고 잘 기르는 일이 이리 힘겨울 줄 몰랐다 
잠든 너에게 솔직히 다 말하고 싶지만

아직 네가 

너무 어리구나 어떤 날은 사랑보다 비대한 일만 눈에 들어오고 그러다 결국 사랑이 가장 중요한 것이 되어 있다

저녁의 기분에 휘둘리지 않을 즈음 돌이켜 보면 모든 문장이 

하나의 긴 기도였다 지웠던 문장들까지도
깨뜨린 낱장의 창문들과 나는 

견디지 못한 표정은
훗날 어느 타자의 슬픔을 나누어 보관하는 데 쓰였다는 안부를 들었고 기쁘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쓰고 찍는 일밖에 없어서

너머로 가서 
과거형으로 동참하는 축복을 시인은 받았고

그러므로 여태 버겁지만

처음부터 나의 이런 작음 또한 신이 알고 있어서

나의 작은 언어와 나의 미약한 영혼 키우는 일에 늘 개입해주었다 나는 그가 말한 사랑에 

둘레 같은 게 없다는 걸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둘레가 없기 때문에 십 년하고도 두 번 더 지났지만 그럼에도 괜찮은 유의 사랑 그런 사랑도 세상엔 있다

언젠가 너에게 이런 이야기를 꼭 할게








토끼



토끼를 주고받았다

외롭다는 말 대신 어젠 토끼를 주고받았다

토끼들이 뛰고 있었다 사람이 두고 간 앞과 뒤를 메우며

위아래를 지우고 물을 마시며

짧은 심박으로

이내 끝날 것처럼

끝나지 않고

오늘은 입춘이고, 미리 골라 꺼내두었던 옷은 혼자만 잠깐 대 보았다

만나기로 했던 친구는

마음이 다 소진되었다고 했다 마스크도 다 떨어졌다고 친구에게

토끼를 보냈다

친구는 기쁨을 늘어놓았다 우리는 이따금 증명 않아도

수고하지 않아도 당근을 원해

오늘

당신의 안경이 그만 자랐으면 좋겠다

내일은 폭우가 예상된다고 했다

타국의 일기예보를

잘 믿지 않는 사람은 종일 다음날 방에서 읽을 지나간 서적을 뒤지다가 겨우

잠들었다

친구도 그랬다고 한다 우리는 자면서도 서로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토끼를 보냈다

토끼를 주고받았다








이상하게 번역된 시



CONGRATULATIONS
축하합니다

ON YOUR ONGOING SOLITUDE
지속되는 당신의 고무 지우개를

YOU WILL
당신에겐

HAVE MANY NIGHTS
충분한 이불이 남아 있지 않을 수 있어요

TO
REPLACE THE MOAN OF CRACKED PLATES OR THE SILENCE OF LONESOME TUESDAY AT 8PM
금이 간 유년기의 탄식이나 서른몇의 저녁 8시가 초대하는 침묵들을

WITH ATTENTIVE EARS
대체할 포옹이

WITH A SOUND OF A NEARLY BROKEN CELLO
그들을 대신할 거의 부러진 첼로의 소리나

WITH A RARE FULL HEART FOR SOMEONE
누군가를 마침내 아끼고 싶은 정성이

CONGRATULATIONS
축하합니다

CONGRATULATIONS
또 안타까움을 전합니다


ON STANDING BEFORE POETRY
그러나 시 앞에 서게 됨을

STANDING INSIDE
바깥에서

THE CURTAINS, PERSISTENT AND WIDE
기다리게 됨을, 집요하고 드넓은 커튼 밖으로

STANDING BEFORE THE OUTDATED FACES
더는 유효하지 않은 낯과 낯 앞에 그럼에도 서기로 하는 의지를

UNENDING
끝나지 않는 당신으로 입장하는데

CONGRATULATIONS
축하합니다








Q 17 



여기, 

이 오후에는

갈등이 없다 면박이 없다 아직 닦지

않은 접시도 없다

썩고 있는 오해도 언성 높이는  

전화도

모기향도 구부러진 자기망상도 잃어버린 악기도 쓰다 만 편지도 없다

다만 


몇 먹을 거리와 새 소리가 있다

소파에서 덜 마른 바지를 흉내 내며 잠들어 있는 사내가 있다


엊그제 나무로 지은 식탁에

널브러져 있다 엊그제의 수치들


아직 살아 있다는 듯

사포질을 분명 마쳤는데


자다 말고 깬 사내더러 아내가 조금 더 자라고 한다

괜찮아 더 자

괜찮아 더 자 


지금은 그것만이 전부라는 듯이 




An One-sentenced Poem

I turn off my phone, lights and screens off, to write an one-sentenced poem, finally, sat down to do this, my phone does not vibrate, until I think it did, I get up to press the screen, it's off, You idiot, that is why you had it turned off, I put it down, agitated, upside down, I am short of myself these days, I lack myself, I come back to write the first word of an one-sentenced poem, I write "I" and out of excitement, I knock over the cup from last night, darn it, this's why you need towels near a desk, I go back to the kitchen, bring napkins to wipe off the water, I wipe like someone who cannot locate the handles of recent memories, what did then I search for all these years, they seem so distant, again, please, focus, I sit in a hurry, this is it, the moment, the moment to retrieve the sentence, I carefully, very carefully choose a cherished mechanical pencil to write with, this always brings me a pleasure, I press on the tip, there is no lead in the mechanical pencil, darn, darn, darn it, you idiot, that's why you always fill out the lead ahead of time, gushing out the lead case on the desk, I pick up the lead, the one landed the closest to me, and when I insert it into the small tip of the mechanical pencil, for one last time, to continue the first and last sentence of this poem, the absence of sound snaps, DHL driver knocks on the door, abruptly, as if he too is searching for the handles to his twenties, slipped out of his narrow pockets, he’s got a box, a huge box, ding dong, ding dong, ding-dong, this is the box that failed to deliver twice, the last chance, this is, darn, I'M COMING!, almost yelling at the innocent young man, looking for his first sentence, I retrieve and open the box, abruptly, really abruptly, pick it up and toss the empty box onto the desk, rushing back to the desk, finally, I am to complete the one-sentenced poem, where there are poured leads, the phone that has been powered off, turned upside down, and smeared water on the corners, with piles of wet paper towels,

where there is no longer the poem I sat down to write.






Q 11 



미움만 남은 몸뚱아리에

사람이 들어올 마당이 없고, 사람이 없는 마을에는 한 번

물도 주지 않았는데

초대한 적 없는 식물들이 지도를 키운다 

몸을 갈라뜨린다 차분해지려고

수긍하고 마는

돌들

2019년을 맺으며

2019년의 사진들을 돌아본다. 지친 줄도 모르고 나를 몰아붙이며 살았구나 싶다. 해야 하는 일들과 하고자 했던 일들이 몸을 뒤섞기 일쑤였고, 그러나 나는 아직 이 일에 애정이 많이 남아 계속해서 해나갈 것 같다.

오월에는 두 번째 시집이 나왔다. 시집에 담은 이민자로서 견디어야 했던 마음을 사진으로도 담아왔는데 11월엔 Ogden 박물관에서 일일 전시의 형태로 나누기도 했다. 이민자로서의 고립감은 덕분에 어느 정도 해소가 되었다. 골몰하며 더 또렷해지는 외로움도 있으나 그 다음 이야기의 지점으로 날 데려가 줄 테다. 꼭 해야 하는 이야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되었으면.

윅에서 가졌던 개인 낭독회는 아직도 온기로 남아 있다. 희경 형이 진행하며 물었던 질문들이 좋았고, 이후의 대화들도 좋았다. 잔잔하지만 사랑의 시간 같았다. 시집이 나오고 무덤덤했는데 팟캐스트에서 타자의 목소리로 내 시를 들으니 눈물이 나기도 했다. 시시콜콜 시시알콜, 고마워요.

정방형의 사진을 올해 적극적으로 찍어 좋았다. 하셀블라드 500CM으로 찍은 사진 중 근래 작업한 <Alternate Realities 차선의 날들> 시리즈는 이 곳에서 어딜 가든 만나는 나무가 상징하는 바를 보게 해주었다. 마음 가까이 두고 있다. 일부는 페이퍼 겨울호에 산문과 함께 발표될 예정이다. 두 계절 지난 마음을 종이로 만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다.

페이퍼에 연재를 시작한 건 여태 기다란 기쁨으로 남아 있다. 쓰는 일을 하기로 결정할 때 내게 닻처럼 보였던 그 잡지가 30년간 동일한 자세로 닻의 역할을 자처해온 것만으로도 나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 닻이 자릴 지킴으로써 향하는 봉착지에 조금이나마 동참할 수 있다니, 더없이 부푸는 일이다. 그리고 연재 때문에 가졌던 어느 저녁, 애틋한 친구를 얻었다.

2016년부터 두 해 동안 시인동네에 연재해 온 ‘사물의 체위’ 시리즈를 엮고 적잖은 추가 작업을 더한 사진산문집도 나왔는데, 제목이 길고 난해하지만 또 그만큼 고집을 부리고 싶은 책을 맺을 수 있어 기뻤다. 많이 읽히지 않아도 신념대로 만든 책이 있다는 건 아쉬움을 덮어쓸 ‘그래도’들을 확보하는 일. 처음이 되어 준 병률 선배와 희경 형이 추천사를 기꺼이 써주었고, 시가 사진이 될 수 있다고 함께 믿어주어 무척 좋았다. 올해 가장 뭉클한 순간이 아니었을런지. 책이 인쇄되기 전부터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애틀랜타의 구름은 여전히 무수했고, 여러 번 찍었고, 보고 싶은 이들의 얼굴을 데려왔다. 이 곳에는 나 혼자 만난 당신들이 여럿 있다. 모국의 친구들에게 직접 보여주고 싶은 둥그스름들. 등기로 보내주고 싶다. 윤후 작가여, 오라.

계절마다 한두 번씩 크고 작은 전시가 있었고, 큐레이터 Mary Stanley와 매그넘 사진가 Bruce Gilden의 선택을 받은 건 정말이지 큰 기쁨으로 남아 있다. 오랫동안 찍는 일을 하고 싶다. 한번도 그것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 마음으로. 충분한 기쁨을 계속 확보하면서. 내년에 찾아올 변화를 미리 예감하고 있다.

며칠 전엔 작년에 원고를 마친, 엮은이로 참여한 책이 나오기도 했다. 몇 달만에 한 권 분량으로 만나는 원고는 타임머신처럼 느껴졌다. 마음을 많이 쏟은 산문과 최선영 작가님의 캘리그라피와 함께 만나는 다양한 시가 있다. 만나주시라.

오월과 시월, 한국에 돌아갔을 땐 아끼는 이들을 만날 수 있어 품의 온도와 형태를 환기 받았다. 짧았지만, 여러 번 그랬다. 돌아갈 때마다 반겨주는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2019년에 처음 만난 사람들 중 이내 아끼는 친구가 된 이들에게도 반가움을 전한다. 동료이거나 같은 업계 종사자이지만 어깨로 남고 동네로 남는 사람들 덕분에 힘을 많이 낸다. 몇 번이고 보고 싶다고 말하는. 여러 차례 전한 마음이어서 다 알 거라 믿는다. 고마웁다.

다음 해로 가기 전 지쳐 있는 몸 마음을 조금 다독이고 가야겠다. 모든 일을 허락하신 주님께 감사를, 곁을 곁으로 지켜준 아내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고. 나의 결함을 품어주느라 수고 많았다고 전하고 싶다. 친구들과 독자분들께도 환한 일들이, 아픔을 온전히 지나갈 체력과 이후를 만들 새 의지와 품이 가득 있었으면.

긴 고마움을 전한다.


#2019 #우리너무절박해지지말아요
#당신의정면과나의정면이반대로움직일때
#캘리로읽는시
#PhotoNOLA #MaryStanley #BruceGilden #LifeFramer
#ontheverge




그러나, 쓰는 일은 그렇다


샤워를 하고 습기를 빼기 위해 선풍기를 틀어두었다. 한번 습해진 화장실은 창이 없어 습기가 잘 빠지지 않는다. 오늘은 왜인지 어떤 마음도 잘 환기되지 않는 날이었다.

머리를 말리려 헤어드라이어를 갖다 대니 슬슬 빠지기 시작한 앞머리가 티가 난다. 들추어본다. 조마조마하다. 이대로라면 십년 이내로 앞머리가 다 빠져버리고 말겠어. 그럼 나는 아빠의 어느 사십대 사진의 애처로운 가르마를 하고 있겠지. 우리 아빠를 사랑하지만 얼굴만 떠올려도 애틋하지만 그건 끔찍한 일 같아. 그런 상상을 그만두고 머리를 마저 말린다. 소란스런 선풍기 소리와 더 소란스런 드라이어 소리 사이에서 오늘 깨고 난 다음 가장 정적인 상태에 있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게 되는 순간. 머리를 말리다 말고 괴로움이 목구멍 밖으로 뛰쳐나오는 날이 잦았다. 요즘의 나는 가만히, 의무 없이 하나의 행위에 집중하고 그 다음 행위로 넘어갈 필요가 있다. 너무 많이 멈추고 너무 많이 방해 받으며 너무 많은 필요를 요구 받는다.

아침에 직장으로 향할 즈음에는 늘 조금 덜 야윈 마음이다. 오늘 아침에도 그랬고, 해서 저녁엔 편지도 쓰고 찍어둔 필름을 인화하고 여유롭게 아내와 미뤄둔 영화도 보아야 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역시나 저녁을 먹고 주방 정리를 마친 뒤 숨을 좀 돌리니 아홉시에 가까워진다. 무언가를 하기엔 이미 지쳐 있다. 마음도 얇아져 있다. 또 하나의 덜 야윈 마음을 얻기 위해서 나는 이내 다시 샤워를 하고 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리고 남아 있는 모발 상태를 살피며 오늘 하지 못했던 일을 생각해야 한다. 그 마음을 희생하면서 수면 시간을 지연하는 날이 있는데, 그날이 오늘이다. 오늘은 무언가 쓰고 싶은 날이다. 근래엔 송고하느라 느슨한 글을 도통 쓰지 못했다.

샤워를 하고 나왔는데 소파에서 아내가 책을 읽고 있었고 그 모습이 예뻐, 그 정적을 손상하지 않으려고 선풍기를 켠 채로 방에서 나는 나의 책을 읽었다. 아내가 읽던 책은 <Bird by Bird>라는 에세이 집인데, Anne Lamott가 썼다. 작가가 쓴 문장을 거의 다 좋아하지만 (그런 일도 드물다) 특히 아내가 날 불러 읽어준 문장이 한번 와닿고 나중에 또 한번 깊숙이 들어와 숨이 가빠질 것 같았다. 그런 문장을 만난 것도 기쁘고, 아내가 그 문장을 귀하게 여겼다는 것도 기쁠 뿐더러, 같은 문장으로 인해 우리가 순간이나마 동일한 마음에 머무를 수 있다는 건 꽤 감격적이다.

한글로 옮기면 이렇다.

“그러나 판매부수를 포함해 쓰는 사람으로서 기대했던 책의 향후는 한 번도 맞았던 적이 없다. 첫 두 권은 그렇다 치고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책을 쓸 때도 그랬다. 출간한다는 것은 그러므로 가늠할 수도, 도무지 ‘옳을’ 수도 없는 일이다. 하지만 쓰는 행위는 그렇다. 쓰는 일만이 그렇다. 쓰는 순간 충당되는 우리의 현재는 늘 그렇다. 쓰기로 했고, 쓰고 있다는 그 자체로 우리는 가늠되지 않아도 채워지려 애쓰지 않아도 또 한번 충당되고야 마는 것이다.”





주둥이는 숨통이었다가 몽둥이었다가


모르는 사람이 죽었다

모르는 사람이 죽었는데 아니 사람이 죽었는데

너무 놀라 잠깐 앉아 있다가

아무렇지 않게 어제 먹다 남은 찌개를 데우고 냉장고를 열었다 닫는다

밥은 먹어야 하니까

그 사람은 사실 내가 아는 사람이었는데
그 사람은 사실 너도 아는 사람이었는데
그 사람은 네가 키우던 그래야하는데가 죽인 사람이었는데
그러면안되는데가 죽인 사람이었는데
그래서그랬을거야로 너는 또 칼질을 하고 있는데

그걸 알고 있니?

너도 아무렇지 않게 어제 먹다 남은 음식을 찾고 있니
찌개를 끓이고 있니

그런 네가 평생 찌개를 못 먹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면
나도 널 죽이는 사람이 될까

주둥이는 몽둥이었다가 숨통이었다가 
어제 살이었다가 오늘 칼이었다가

필요할 때만 숨통인 것들이 숨 쉴 때만 열리는 날이 왔음 좋겠어 그리고 그게 다 네 탓이라고 하면
누군가 내가 휘두른 몽둥이를 가져다주겠지
날카롭게 튀어나온 톱니들이 찌개를 자른다

그런 것들로 무얼 하게?

입술이 없으면 무엇이 우릴 막을까

입을 떠나자마자 전부 부서지면 좋겠어 사람을 부러뜨리는 모든 언어가

뜨거운 걸 먹으면 입술 위로 보이는 칼자국들






서른 셋



서른 셋이다. 서른 셋이 되어 있다. 서른 셋의 나는 조금 더 차분하고 조금 더 이성적이고 단단한 사람이 되어 있을 줄 알았다.

서른 셋에는 스물 다섯부터 염원하던 시인이 되어 있다. 어쩌다 몇 권의 책을 쓰게 되었다. 어쩌다라고 하기엔 나름의 최선으로 고치고 지우고 오래 썼지만. 오늘날의 나는 어쩐지 불안하다. 여태 그렇다. 등단하고 책을 내면 그게 마지막 도착점일 거라 생각한 적도 있었다. 쓰고 찍는 일은 앞으로 나아가기보다 옆으로 확장되는 성격의 일인데. 주변이 늘어날수록 품이 늘수록 알게 되고 보는 게 많아서일지. 늘 부족한 것 같다.

3년간 밤낮 매달려 완성한 책은 기대보다 많은 수의 독자들에게 가 닿지 않았다. 작업 당시의 치열함은 서재에 남아 있는데 그것을 갓 지난 사람은 쓴 후의 시간을 버텨야 한다. 혼자서. 책이란 게 그렇지. 여느 짓는 일이 그렇지 않을까, 하면서. 6교 7교를 봐도 아쉬움은 계속 있다. 인쇄가 다 끝난 시집도 산문집도 자꾸 고치고 싶고, 그런 나는 8년 전의 내가 생각했던 서른 셋 작가의 모습은 아니었다. 완전할 줄 알았지. 이때가 되면. 쓰는 동안 계속해서 각인되는 한 가지가 있다면 사람이어서 완전할 수 없다는 사실일 테다. 나는 그 사실을 용인하게 되었다. 문장 앞에 무력했던 나는 덕분에 사람으로서 무력함에 대해 배우게 되었다.

서른 셋의 나는 고작 휴대폰으로부터 벗어나려 싸운다.

작가라는 자가 타국에 지낸다는 이유로 지기들이 그립다는 이유로 온라인에서 목마름을 내거는 일이라니. 자주 부끄럽다. 그럼에도 온라인으로 만나 실제로 품을 나눠갖게 된 친구들 있어, 안부가 궁금한 이들의 요즘이 거기 있어, 나에게 구름 위의 플랫폼은 중요하게 되었다. 마음이 먼저 향하는 곳은, 그럼에도 사람이기 전에 종이이고 백지여야 할 텐데. 요즘은 통 시를 쓰지 못하다가 어제 한 편 썼다. 스무 몇의 나는 조금 더 미숙한 시를 썼지만 매일 썼었다. 내내 그렇게 할 말이 많을 줄 알고. 청탁이 오지 않아도 내리 써두는 삶이 후일의 나의 삶이라 상상하며. 
그런 시절도 있었다.

서른 셋의 나는 조금 더 분명한 표정일 줄 알았다. 한껏 들뜨거나, 맘껏 슬퍼하거나, 나의 끝을 모르는 사람처럼 기뻐할 줄 알았다. 그땐 그게 물리적인 시간과 조금의 여유와 체력이 요구되는 일인 줄 모르고.

사진가로 활동하면, 선별하고 후보정할 사진이 쌓여 있어도 두근대는 밤만 남아 있을 줄 알았다. 마감에 쫓겨도 그게 마냥 좋을 줄 알았다. 그게 일처럼 느껴지는 날이 있을 줄 몰랐다. 액자에 들어갈 내 사진 앞에서, 나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는 큐레이터 앞에서 발 끝이 간질거리는 기쁨은 영영 같은 폭의 기쁨을 유지할 줄 알았다. 삶의 거의 모든 욕구가 그런 데서 채워지고 충족될 거라 생각했다.

충분하다는 것을 뭘까? 전시에서 돌아와 여전히 그런 순간이 가능하다는 것에 감사하면서도, 얼굴 모를 공허를 맞기도 한다. 소리가 나지 않는다. 이유도 모르고 헤매이는 사람의 걸음은. 그럼에도 슬프지 않았으면 한다는 친구의 말을 떠올리며 허락된 축복을 자꾸 놓쳤다. 아무도 가로채지 않았는데, 아무것도 놓치지 않았는데, 어디서 채워야 하는지 의구하는 마음이 오늘 밤을 밀어내고 있다. 마음은 조금씩 더 큰 다음을 갈구하고, 그런 것이 스스로의 잘못인지 반복된 질문을 통과하면서 나는 여태 스무몇의 커튼을 지나기도 한다. 저에게 그런 책임을 돌리면서. 그런 모습을 가끔 치부로 여기면서.

사람 앞에서 나는 조금 더 노련해졌나. 서른 셋엔 어떤 상황에서도 떳떳할 줄 알았다. 스스로에게도 그리 대해줄 수 있을 줄 알았다. 모든 감정에 대해 정확하게 이야기하고 사랑하는 이들에게 원할 때 언제든 손 내미는 삶을 살 줄 알았다.

나는 조금 더 겁을 먹었다. 노련해졌는데 조금 더 조심하게 되었다. 더 많이 알게 되었는데 조금 덜 자주 말하게 되었다. 조금 더 뭉뚱그려 조금 덜 또렷하게 조금 덜 자주 표현하게 되었다.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애정하는 물건들에 대해. 그런 순간과, 깊이 충만해지거나 움츠러드는 슬픔에 대해 서툴러졌다. 그런 모습을 가끔 안타깝게 여기게 되었다. 자기 연민을 부끄러이 여기면서도, 그런 나를 타파하려 애쓰면서도 스스로가 슬퍼지는 것을 어찌할 수 없는 날이 있다. 애쓰고 있다는 것을 들킬까봐 내색 않으면서. 서른 셋에는 서른 셋의 허물을 기르며 살고 있다. 물이 없는 도시에 사는 사람은 혼자만 갈 수 있는 강가를 거닐다가, 이런 글을 쓰고 있다. 

서른 셋인데도.

서른 셋이라서 그리하고 있다.



친구에 대하여

언제부터였는지. 친구란 개념은 형체 없고 자주 부재하는 모호한 것처럼 느껴진다. 스무 몇까지의 나는 친구란 것이 무엇이고, 무엇이어야 하고, 누구라고 늘 뚜렷한 지도를 그려놓고 살았다. 그리하고 싶어 했다. 그런 이념은 어느 순간 무너졌다.

불안해서 그랬나, 품을 잃는 게. 원하지 않는 사람을 나의 안쪽으로 들이는 게. 그런 생각을 하는 데 꽤 많은 시간을 쏟았고 어느 시절에는 사람이 나를 정의하는 단위이기도 했다. 사람이 궁금했고. 중요했다. 정확히 말하면 나의 사람들의 유무가 중요했다.

사진을 하고 시를 쓰게 된 뒤로, 친구의 경계가 말랑해졌다. 그리고 친구의 유무는 이전 만큼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이따금 지나간 시절 나에게 중요했던 것을 놓친 사람처럼 가끔 느끼기도 하지만.

대낮에는 직장에서 초저녁까지 근무를 하고, 밤엔 보낼 사진을 다듬고 송고 준비를 하고 전시 준비도 해야하는 사람은 점점 몸이 짧아지고 사람에게 내어줄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자주 만나지 않아도, 친구는 친구니까 괜찮다고 생각하게 된 이는 더 이상 사람에 대해 예전만큼 궁금해하지 않는다. 아끼는 이들에게도 그런다.

짓고 찍는 일의 괴로움에 대해 토로할 수 있는 대화만이 중요해졌고 그것을 충당시키는 최소한의 인간관계만 감당하며 살아간다. 조금 기형적인가. 여전히 풍요롭다 느낄 만큼의 품을 두었지만, 아끼는 이들이 있지만, 짓는 일을 하며 나의 가장 가까운 친구들은 동료들이 되었다. 타국에 머무는 사람은 기껏해야 일 년에 한번 실제로 얼굴을 마주할 수 있지만, 동일한 괴로움을 말하고 기댈 수 있으니까. 마감과 이유 모를 고독과 자기연민을 포함한 혼자 지나는 모든 고충을 그들은 다 알아줄 것 같으니까. 실제로 함께 겪고 있으니까. 그렇다.

온라인으로만 알게 된 동료들에게도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기묘한 마음이다. 만나지 않고 사람으로서 그들을 알지 못하면서 그들을 안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느끼는 거. 동료애를 넘는, 불가해한 인간적인 애정이 있다. 작품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지만, 함께 쓰고 찍는다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늘 충분히 가까이 있다. 원하는 만큼 자주 만나지 못하는 이 생계 우선주위의 세계에서 두 개의 낮을 사는 사람들에게 그런 관계는 중요하다.

인스타그램이나 트위터 같은 소셜미디어는 각자가 가능할 때 안부를 확인할 수 있는 공공에 자리한 개별적 만남의 공간이 되었고, 나는 그곳에서 가까운 이들의 기분을 확인할 뿐이다.

누군가 보고 싶은 밤이다. 거긴 아침이겠지. 나는 보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하는 사람이었지만, 전하지 않으면 모를 마음이지만, 너무 자주는 않기로 한다. 친구 중 하나가 말했던 보이지 않아도 연결돼 있다는 믿음. 그 믿음을 연습하기로 한다.

살아내려는 모습이 보고 싶다는 마음처럼 느껴지는 아침으로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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